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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이_사회적시점

[경제-이건희 1편] 한미연합군 폭격에 휘청한 일본 경제 위기!

by 쟁이님 2020. 11. 3.

 

 

 

[경제-이건희 1편] 한미연합군 폭격에 휘청한 일본 경제 위기!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이 약 6년간의 투병 끝에 지난 2020년 10월 25일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 소식에 한국에서는 물론 전 세계 언론에서 그의 78년 삶을 재조명하고 있는데요.

故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의 가장 큰 업적으로 평가받는 것은 바로 반도체입니다.

 

한국에서 아직 컬러TV도 만들 줄 몰랐던 1974년 12월 그는 자신의 개인 돈 6억원을 들여 부도 위기에 놓였던 한국반도체 지분 50%를 인수했는데요.

손목시계용 반도체를 만들던 한국반도체라는 작은 기업이 감히 넘볼 수 없을 거라 생각했던 세계 1위 반도체 생산국가인 일본을 침몰시키고 대한민국 경제사를 바꿔놓는 주인공이 된 겁니다.

 

그런데 한국이 세계 1위 반도체 생산 국가가 될 수 있었던 배경에 미국과 일본의 오묘한 관계도 크게 작용했습니다.

1853년 흑선내항 사건으로 시작된 미국과 일본 양국 간의 비교적 원만했던 관계는 일본의 진주만 공습과 태평양전쟁으로 인해 최악으로 갔다가 한반도가 6.25전쟁으로 몸살을 앓던 1952년 미일안전보장조약에 체결되면서 두 나라는 그야말로 깨가 쏟아지는 우방국으로 지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속내를 살펴보면 조금 복잡한 구석이 있습니다.

세계 1위 초강대국 미국은 누군가 자신들의 경제적 입지를 위협한다싶으면 그땐 깡패가 되는 겁니다.

그런 모습은 지난 2018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미중 무역갈등에서도 볼 수 있는데요.

 

60년 전 미국과 일본 사이에서도 벌어졌던 일입니다.

1941년 12월 사실상 선전포고 없이 미국 하와이를 폭격한 폭격한 일본은 그로부터 약 4년 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 맨하탄 프로젝트의 결과물 원자폭탄 두 방을 맞게 됩니다.

되로 주고 말로 받은 일본은 패전국으로 전락해 전쟁배상금 부담까지 짊어지며 영원히 농업국가로 남을 뻔했는데요.

하지만 1950년 벌어진 한국전쟁으로 발판 삼아 극적으로 살아나면서 1965년 세계 5위권 경제대국으로 급부상합니다.

 

 

 

 

 

공산당에 잡아먹힌 중국보다 좀 낫다 싶은 수준에서 자본주의의 우월성 정도만 보여주면 되었을 일본 경제가 생각보다 너무 많이 커버리면서 미국은 자신들이 호랑이 새끼를 키웠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일본산 섬유제품이 미국 경상수지를 악화시킨다는 이유로 1972년 오키나와 섬을 일본에 돌려주는 조건과 함께 미일 섬유협정을 체결했는데요.

 

이때부터 일본이 뭔가 하려고 할 때 마다 미국이 일본의 날개를 꺾어주는 날들이 이어집니다.

1972년 섬유 협정에 이어 1976년엔 미국이 일본산 철강제품 수입 한도를 정해둔 쿼터제가 도입되는가 하면 미국 컬러 TV시장의 3분의 1을 장악한 일본 제품을 내쫓기 위해 1977년 통상압박을 가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1970년대 들어서 혼다와 닛산, 토요타, 마쓰다 자동차가 미국 시장에서 승승장구하면서 미국 자동차 제조사의 경영난과 함께 크라이슬러는 파산 위기까지 처하게 되는데요.

그러자 1981년 레이건 정권은 미일 자동차 및 부품무역에 관한 협정을 맺어서 연간 일본 자동차 수입량을 168만대로 막아버립니다.

 

그래도 성에 차지 않았는지 미국은 1985년 플라자합의를 계기로 엔고 현상을 유도해 엔화 가치를 2배로 부풀려서 일본경제에 버블경제라는 달콤함과 잃어버린 20년이라는 절망을 동시에 맛보여줬습니다.

그런데 1986년 미국은 한국에게 아주 커다란 선물을 하나 주게 됩니다.

 

 

 

 

 

 

사실 미국은 1905년 일본과 몰래 맺은 가쓰라 테프트 밀약을 통해 일본이 한국을 강제 점령하는 걸 용인해준 적이 있습니다. 그로부터 81년 뒤에 미국이 일본을 협박해서 체결한 미일 반도체협정은 결과적으로 NEC와 히타치, 도시바, 후지쓰, 미쓰비시, 마쓰시타 그리고 내쇼날까지 세계 메모리반도체 시장을 장악했던 일본의 7대 반도체 회사를 시궁창으로 몰아넣게 됩니다.

 

사건의 발단은 1980년대 중반부터 일본산 반도체가 품질과 점유율 측면에서 미국을 앞지르며 독주하자 1985년 미국 인텔이 D램 사업을 포기하면서 벌어졌습니다.

혼자만 죽을 수 없다는 판단에 인텔이 미국 무역대표부에 일본 반도체기업을 제소한 건데요.

일본정부의 보조금 지급중단, 일본 반도체기업 외국인 직접투자 허용, 일본 반도체 시장 쿼터제 도입 등 일본에 절대적으로 불리한 조항들로 가득 찬 협정 때문에 일본 반도체 기업들은 어려움을 겪기 시작합니다.

 

바로 이때 32살 이건희의 손에서 시작된 한국 반도체 산업은 전무후무한 기회를 맞이하게 됩니다.

 

 

다음편은 2부에서 마저 설명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이만~